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들린 올브라이트 (문단 편집) == 생애 ==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지만 부친인 요제프 쾨르벨(Josef Körbel)과 모친 안나 슈피겔로바(Anna Spiegelová)를 비롯한 가족들은 [[가톨릭]] 신자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영국]]으로 피난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때 친인척 3명이 학살당했다. 전후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의 길을 걷자 1950년 [[미국]]으로 이주한다. 1957년 미국 시민이 되었으며 1959년 [[웰즐리 칼리지]]를 우등졸업하며 정치학 학사를 받았고, 동시에 언론 재벌 올브라이트 가문의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Joseph Medill Patterson Albright, 1937–)와 결혼하고 한동안 가정 [[주부]]로 생활한다. 남편은 당시 윌리엄스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자료조사를 위해 덴버 포스트에 드나들며 당시 언론인을 지망해 덴버 포스트의 업무보조로 일하던 매들린과 알게 되어 6주만에 청혼을 하였다. 남편의 외가쪽 선조는 시카고 트리뷴을 경영하던 조셉 메딜로, [[노스웨스턴 대학교]] 메딜 언론대학의 메딜가에 해당한다. 결혼 후 조셉이 시카고 선 타임스에서 잠시 일하다 워싱턴 DC에 살던 시절 매들린은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1년 후 남편의 이모 얼리샤 올브라이트가 사망한 뒤 가업인 뉴욕 데일리 뉴스를 잇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하여, 매들린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는 1968년 컬럼비아 대학교 러시아연구소에 인증서를 받고 석사를 취득하였다. 이후로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에드먼드 머스키]]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며 1975년 공법 및 정부학(public law and government)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해당 학과는 현재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SIPA)에 들어있고 매들린의 전공이 소련정치이므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보면 된다. 1970년대 후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의 입법담당 수석고문을 잠시 지냈고,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당시 외교안보보좌관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밑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s-2|NSC]] 직원을 역임한 후 1982년 남편 조셉 올브라이트와 23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이혼한다. 조지타운의 집과 농장을 받게 되어 재정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마음이 공허해 도피처로 찾은 것이 [[조지타운 대학교]]의 교수직과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운동본부 부본부장이었다. 매들린은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소련]] 외교를 가르친다.[* 이때 가르친 제자 중에 훗날 [[일본]]의 외무상이 되는 [[고노 다로]]가 있다.] 교수로 일하며 1980년대엔 2번의 민주당 부통령·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지만 정권 교체에 실패한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를 돕고 그가 당선되자 1993년 [[UN]] 주재 미국대사로 부임하여 UN 개혁을 밀어붙이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결국 부트로스 갈리 총장의 연임을 좌절시킨다. 1997년 빌 클린턴 행정부 2기의 출범과 함께 국무장관에 취임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적극 개입해 학살을 막으려 노력했다. 한편 1998년 8월 [[나이로비]]에서 생긴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이전에 [[케냐]] 대사가 대사관의 경비를 강화하도록 국무부에 거듭 요청하였음에도 이를 묵살했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의 NPT 탈퇴로 불거진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0년, 북한 외무상 [[백남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 [[조명록]]과 미국에서 회담했으며 자신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회담을 가졌다. 2009년부터는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회장을 역임하며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의 외교학교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했다. 2012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비영리 싱크 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2022년 3월 23일, 암으로 별세하였다. 이 소식에 [[조 바이든]],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전·현직 대통령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하였다. [[https://m.yna.co.kr/view/AKR20220324014300071?section=international/north-america|#]] 그녀의 사망 이듬해인 2023년 6월, 모교 조지타운 대학교가 외교학부의 명칭을 '올브라이트 외교학부'로 개명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교내 여론을 포함한 대내외의 논란이 이어지면서 철회했다.[* 그동안 조지타운의 외교학부는 설립자인 예수회 사제 에드먼드 월시의 이름을 따서 불려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